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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드와 만난 순간부터 나는 호죠 에무가 되었다. 

내가 지내던 보육원은 원생도 별로 없는, 꽤 조용한 곳이었다. 그만큼 후원자도 방문하는 사람도 적은 곳이어서 형이나 누나들은 입양되기보다 나이를 채워 보육원을 떠나는 일이 잦았다. 나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여길 떠난다면 어디서 살지를 생각하곤 했다. 공부도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니었고 특출난 재주도 없으니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 없으리라 생각한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같이 방을 쓰던 형이 말해줬다. 어디서 살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살지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나도 너도 재능이 없어서 쉽게 살기는 힘들 거라고. 형은 몇 달 후에 생일 축하를 받으며 큼지막한 가방에 짐을 챙겨 넣고 떠났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오가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방문한다고 하면 호들갑을 떨기 일쑤였다. 나는 쓰레기를 발로 밀어 침대 아래로 숨기며 얼른 방문객이 돌아가길 빌었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걸 들키면 간식을 못 먹게 될지도 몰랐다. 그 날의 간식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이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국 그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다. 


“■■■, 호죠 선생님이 널 보고 싶어 하셔.” 

“저를요?” 

“그래, 잠깐 와 보겠니?” 


선생님이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를 불러냈다. 나는 이불을 대충 개켜두고 선생님의 손을 붙잡은 채 원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가 유난히 길었다. 다른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훔쳐봤고 어떤 애는 입 모양으로 ‘무슨 일이야?’하고 묻기도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고개를 젓는 것밖에 없었다. 똑똑, 노크하자 안에서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안쪽 소파에 앉은 사람이 나를 보고는 웃었다. 검은 곱슬머리에 검은 정장을 걸친 남자였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 뒤로 몸을 숨겼더니 그 사람은 이내 소리내어 하하 웃기 시작했다. “무서운 사람 아니야. 이리 와.” 

나는 쭈뼛거리며, 반쯤 선생님의 손에 밀려서 남자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남자는 내게 몇 가지를 물어봤고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떻게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덕분인지 긴장이 풀려 내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저를 입양하실 거예요?” “응, 그러려는 참이야.” “아저씨 이름이 호죠예요?” “음~ 응,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할까. 그리고 아저씨 아니거든!” 

남자는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할게 더 남아있는 모양이었고 나는 다시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콩닥거렸다. 입양된다고 생각하니 온갖 생각이 다 몰려왔다. 아, 엄마는 누구냐는 말은 왜 묻지 않았지 생각하면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깜빡 잠들었고 눈을 뜨니 간식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왜 깨우지 않았냐고 화를 내려다가 갑자기 괜찮아졌다. 난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으니까. 나가면 아빠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겠지. 

며칠 후 나는 보육원을 떠났다. 친구들이 울먹이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나도 훌쩍거리면서 꼭 연락할게, 연락할게 하고 차에 탔다. 남자는 나를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반대편 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으며 “나는 파라드야.” 하고 말했다. 


“호죠 파라드?” 

“아니, 아냐. 파라드. 그냥 파라드. 너는 나를 그렇게 불렀으면 좋겠어.” 

“아빠가 아니라요?” 

“밖에선 그렇게 불러도 돼. 그렇지만 우리 둘이 있을 때는…응. 존댓말도 안 써도 되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 그것만 지켜주면 돼. 괜찮지, 에무?” 


나는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보여준 입양 서류에 내 이름이 ‘호죠 에무’로 적혀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영원한 꿈. 내 이름. 새 이름. 어떻게 쓰는지 한자 연습을 해 놓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아, 음… 그니까… 알았어, 파라드.” 

“응, 에무. 착하다.” 


그는 핸들에 기대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큰 손이 마음에 들었다. 배시시 웃었더니 그도, 그러니까 파라드도 나를 따라 웃었다. 곧 차가 출발했고 집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 자도 괜찮단 소릴 들었다. 어쩐지 오기가 생겨 잠들지 않으려고 기를 썼지만, 정신을 차리니 나는 파라드에게 안겨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깼어? 좀 더 자.”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눈을 감고 잠들었다. 그 날은 아주 오래오래 꿈을 꿨던 것 같다. 길고 영원할 것만 같은 꿈. 파라드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동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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