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조 미래 시점
*이별소재 주의
그와의 이별엔 비 냄새가 났다. 나는 그가 이별을 고하는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항상 내 이야기를 했고,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며, 미래를 그리며 자신은 끼워 넣지 않았기에. 혼자 걸어가는 긴 터널의 끝에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얻지 못했으므로. 잡았다고 생각한 손을 언제 놓칠지 몰랐으므로. 그리하여 좋은 아침, 잘 자, 다녀와, 다녀왔어, 좋아해, 사랑해, 계속, 곁에, 있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나에겐 이별이었다. 키리야, 씨. 그리고 지금 이별을 고해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캐리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반 바퀴 돌았다. 갈게요. 종지부를 찍듯이,
잘 가.
문을 닫았다. 조용한 복도에서 비 냄새가 난다. 쿠죠 키리야에게서 나는 냄새와 같았다. 하와이니 알로하니 형형색색의 셔츠를 걸치고 있는 주제에 품 안에 빠듯이 들어오도록 끌어안으면 이상하게 축축하고 눅눅하고 차갑고, 기분 나쁜, 크리스마스의 비 냄새가 났다. 손끝에서 체온이 느껴져도 죽음을 끌어안는 느낌이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가 차라리 담배를 피우거나 향수를 썼으면 했다. 쿠죠 키리야는 담배나 향수를 싫어할 것이다. 알코올 냄새가 익숙하면 익숙했지, 인공적인 향이 맴도는 건 싫어하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 설명 없이 향수 뿌려주세요, 한마디만 해도 그는 고개를 끄덕일 터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삼킨 말. 넘긴 이야기. 숨긴 생각들. 키리야에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서 넘쳐흘렀을 때 나는 원망 대신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키리야 씨를 더는 사랑할 수가 없어요. 같이 있을 수 없어요. 무서워요, 까지. 그는 그러자고 했다. 같이 있을 수 없다면, 선택지는 하나 아니겠냐고.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서 한참 손가락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래, 위를 향하는 화살표 두 개가 빨간 색으로 박혀 있었다. 손톱으로 버튼 옆의 점자를 긁었다. 다른 층에서 누른 버튼으로 엘리베이터가 서너 번 왕래하는 동안 계속.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복도가 원망스럽다. 누군가 대신 버튼을 눌러주었으면, 하고 어리광을 부린다. 하지만 어리광을 들어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 없어. 없어서, 결국 버튼을 눌렀다. 패널에 화살표가 떴다. 이별이 내려오고 있었다. 비처럼. 이별도 비도 싫어. 무서워. 눅눅하고 물 냄새가 나. 떠나고 싶지만 떠나고 싶지 않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뒤로 돌릴 수는 없어도.
깨달으면 바닥에 톡톡 물방울 자국이 새겨지고 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이별이니까. 이별의 순간에는 항상 비 냄새가 났고. 비가 내렸고.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말리며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수없이 나를 떠나간 사람에게서 비 냄새가 난단 사실은 기묘한 외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같이 있는 순간에도 항상 외로웠다. 그를 끌어안고 잠들어, 눈을 떴을 때 비가 그쳐있기를,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이 마르기를 빌었는데.
맑은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면에 거울이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조명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으니까, 앞을 보지 않고 바닥만 보고 걸었다.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고. 나는 참을 수 없어 주저앉아 울었다. 사랑하고 싶었는데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곁에 없었다. 아니야, 항상 있었다. 있었는데도 외로워. 손을 잡을 수 없어. 그가 떠날게 두려워서 내가 떠난다. 그가 나를 떠날 수 없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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